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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

Gustave Flaubert

약력
아버지가 외과부장으로 있던 프랑스 루앙 시립병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플로베르는 병원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염세적인 사고를 갖게 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었고,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그의 정신을 뒷받침하는 양식이 되었다. 염세주의와 해학 정신은 자동차의 두 바퀴처럼 두 축을 이루며 끝까지 플로베르의 사고 밑바탕에 존재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플로베르는 당시의 우울한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고 ‘광기와 자살 사이에서 방황하는’소년이 되어 많은 습작을 한다.

플로베르는 파리의 법과대학에 등록하나 적성에 맞지 않아 낙제를 하였고, 1844년 간질로 추정되는 신경발작을 계기로 학업을 그만두고 루앙으로 돌아와 요양을 하며 집필에 전념했다. 1851년 집필을 시작하여 하루 12시간씩 고된 작업 끝에 드디어 1856년 《보바리 부인》을 완성했다. 《보바리 부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작품의 몇몇 대목이 선정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기소 당한다. 쥘 세나르의 명쾌한 변론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작가는 문학적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함께 얻으며 우발적인 《살람보》,《감정교육》 등을 발표했다. 내용과 형식이 분리되지 않는 생명체처럼 완결된 작품을 꿈꾸던 작가는 1880년 5월 미완의 작품 《부바르와 페퀴세》의 원고를 책상에 남긴 채 뇌일혈로 사망했다.